화 있을진저

이사야 5:18~23

하나님께서 “화 있을진저”라고 하시며 경책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는 것,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것, 돌이켜 되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극상급 포도나무를 심었으나, 최상급 포도(공의와 정의)가 아니라 들포도(포악과 부르짖음)를 맺은 포도나무에 대하여 하나님은 진노와 심판을 선포하신다. 히브리어의 언어 유희: 정의(mishpat)가 아니라 포악(mispach), 공의(tsdaqah)가 아니라 부르짖음(tsa’aqah)이었다. 발음상으로는 비슷했지만 전혀 다른 열매를 맺었다.

들포도의 사례들심판과 결말 (“화 있을진저”)
1부유한 자가 이웃의 집을 사들여서 집을 확장하며, 주변의 땅들을 사들여 독점하는 행태. 열심히 일해서 집을 사고 더 큰 땅을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의 극단적 이기주의가 문제. 악한 방식으로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고, 자신만을 위해 경계선을 새로 만들고…그런 중에 포악과 폭력을 행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하나님의 심판은 그러한 집에 살 사람이 없게 하시며, 빈곤한 소출이 나게하실 것이다.
2세상의 쾌락과 감각의 즐거움에만 집중하는 자. 육체의 즐거움을 취하나, 영혼의 피폐함을 살피지 못한다.스올의 권세, 죽음의 권세에 삼켜지게 될 것이다.
3세상의 생각과 체계를 하나님의 진리와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 세상의 지혜로 여긴다. ‘하나님의 심판이 신속히 임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이 아니냐’고 말하며,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
4옳고 그름에 대하여 분별하는 기준이 상실된 자.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옳다고 하고, 손해가 되면 그르다고 한다. 내로남불. 아전인수. 절대적 가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소견대로 판단하는 것을 최고의 지성으로 생각한다.
‘포악’이 때로는 ‘의’가 되고, 폭력이 ‘정의’로 둔갑된다.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5‘지헤’와 ‘명철’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문제다.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자신을 절대적인 기준의 가치로 평가한다. 자신이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더 신뢰한다. 타인의 조언이나 훈계도 소용없다.
자기확신으로 가득찬 교만. “확증편향” 어떤 생각이나 주의에 고정되어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시하여,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 안에 갇혀 있는 것.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 요한계시록 3:17: 네가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고, 다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네가 곤고한 것, 가련해진 것, 가난해진 것, 눈먼 것,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6전쟁에서 창과 칼을 들어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싸우며 발휘해야 하는 “용맹함”(기보르; gibbowr)과 실력과 재주, 능력(“잘 빚는”; 하일, chayil)을 악하게 발휘하고 사용하는 자: 용맹을 뇌물을 받는 데에, 죄를 짓는 데에 사용한다. 재능으로 위조 지폐를 만드는 사람, 악인을 의롭게 만드는 데에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 의인에게서 공을 빼앗고 악인으로 몰아가는 재능을 발휘하는 것

이러한 들포도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는 불타올라 그치지 않으며, 그 심판을 내리시는 펴신 손을 여전히 계속 펴고 계실 것이라 하시는 말씀의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은 자녀를 꾸중하기 위해 대문밖으로 쫓아낼 때마다, 그 잘못됨으로부터 돌이키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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