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
한국교회 갱신의 관점에서 본 공공신학 논의 /김병권 박사
공공신학은 교회만을 위한 신학이 아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신앙을 설명하여 그들을 설득하고 사회적 변혁을 위해 영향력을 갖는 신학이다.
1974년 세계 150개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참석한 세계복음화국제대회에서는 로잔언약을 승인하였는데,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를 포함하고 있다.
왜 이 문제를 계속 과제로 삼고 씨름을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을 하자면 복음 또는 신앙의 공공성이 한국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 명시적으로 수용되었지만 그 명시적 공공성이 교인들의 삶이나 교회의 에토스에 실제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 공공(公共)신학, 그러면 나는 사적(私的)신학 했나?
공공신학자 칼빈을 연구한 김민석 박사, 한국공공신학연구소 소장
저는 20세기 말 이후 세계 교회의 그리고 최근 한국 교회의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현상은, 교회가 그리고 복음이 공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사적인 영역으로 숨는 듯한 양상에 대해 반응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즉, 공공신학의 목적은 이미 전통적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공공성’을 더욱 강조하여 교회로 하여금 공적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공공신학은 개혁주의 전통이 사적 신학을 해왔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전통이 가지고 있는 복음의 공공성을 재발견하자는 운동이라고 말 할 수도 있습니다.
“공공신학이 아니면 사적신학이라는 말이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피하고, 공공신학은 복음이 지닌 공적 진리, 공공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공신학이라는 말은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이미 오래된 용어입니다. 비전공자들이 볼 때 그분들의 영역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보수신학도들이 공공신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공신학은 자유신학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저는 공공신학을 종교개혁자 칼빈과 연결하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 전통적인 신학 v. 공공신학
이재영 박사
전통적인 신학은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 통치의 세계를 우선적인 전제로 하고, 인간의 세상은 그러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존재하는 세계다. 그런데, 공공신학은 그러한 전제에 기반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이해가 없는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화법을 전환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는 ‘다원주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석 목사는 [데일리굿뉴스]에서 “절대적 믿음이 부르는 폭력성: 공공신학의 시선으로 본 오늘의 한국교회”[1]라는 주제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오늘날 기독교는 마치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다양한 신념과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다.
따라서 기독교는 자신과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도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인종, 문화, 신념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평화와 공공선을 위해 기여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등 다양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만약 모든 종교 집단이 각자의 신념을 고수하겠다며 사회적 힘겨루기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평화가 아니라 혼돈이고, 결국 지옥 같은 세상일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가?
물론 이것은 기독교 신념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성경에 근거한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신념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중한 태도와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표현되고 설득돼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믿는 진리는 강압이나 혐오가 아닌, 이해와 설득을 통해 전해질 수 있다.
공공신학의 화법은 세상과 파트너로서 대화하기 위해 ‘진리와 진실의 수호’라는 공적 목표를 주창하며, 합리적인 논증과 사실관계 규명을 통해서, 세상 속의 담론들을 기독교 세계관과 윤리, 그리고 신학의 공론장으로 끌어오고, 또한 세상의 공론장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공공신학은 다시 말해서 ‘세상 속에서 행동하는 신학’인 것이다. 공공신학은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와 세상을 연결해간다.
이런 견지에서 ‘엘로티스 매거진’은 온라인 언론매체로서 공적 참여를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여, 공공신학은 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엘로티스 매거진은 그 담론과 이슈의 설정과 구성에 따라 기독교 신앙을 위한 공론장이며, 동시에 세상의 공론장으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공공신학은 또한 공공정책과의 통섭적 연구와 협업을 통해 정책적 제언으로써 정치에 참여하며 공동체적 삶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